담배향 술주정

W.비앙카



*미래날조 주의




보쿠토는 하얀 숨을 들이마시고 뱉었다. 독한 연기가 숨결에 실려 몸속으로 빨려들어가다 허공으로 흩어진다. 하얀 장대를 물은 입술이 천천히 움직인다. 입술 틈 사이로 느껴지는 매캐한 달콤함은 결코 뿌리칠 수 없는 맛이다. 보쿠토는 담배를 지져 끄며 생각했다. 이 녀석과의 키스는 정말로 끊을 수가 없네. 아카아시가 싫어하지만.


밤 열한 시가 거의 되어 간다. 어둠으로 잠긴 하늘은 도심답지 않게 꽤 많은 별들이 박혀 빛나고 있었다. 확실히 오늘은 날이 맑았다. 바람도 선선한 게, 밖에 나가서 담배 피우는 것도 편하구나. 보쿠토는 폰을 두 번 두드렸다. 자동으로 켜진 화면에는 아카아시가 미소 짓는 사진배경이 띄워졌다. 문자 알림은 여덟 시 이후로 아직 없었다. 회식이라고 했다. 보쿠토는 이해를 잘 하는 남자였다. 늦은 귀가에도 별 불평은 하지 않았다. 뭐 아카아시가 마냥 연약하지도 않고, 걱정은 되지만 어엿한 사회인인데 알아서 처신은 잘 하겠지. 보쿠토는 시계를 볼 생각도 않고 폰을 꺼 주머니에 넣었다. 사실 자신보다 아카아시 쪽이 더 믿음직한 인물이노라고, 그는 자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아카아시를 사랑하기 훨씬 전부터, 아카아시가 그저 같은 팀 세터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보쿠토는 나름대로 자신이 자랐다고 여겼다. 활기 넘치고 사리분별을 잘 못하던 천방지축 고등부 주장 때와는 달랐다. 배구 국가대표가 되면서, 보쿠토는 점차 자신을 올바르게 바로잡았다. 아카아시는 제가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던 것도 나이를 먹으니 바로 배우시네요, 라고 했다. 그러자 보쿠토는 시간이 답이었다고 웃는 아카아시의 목에 매달리며 에, 아카아시 그래도 맞먹을 정도로 날 잘 다뤄 왔는걸! 하며 그를 치켜세웠다. 그러나 배움에도 엇나감이 있었는지, 보쿠토는 대학 생활 그즈음에 어쩌다 담배를 배웠다. 그리고 몰래 피워왔던 담배는 흡연 생활 1년 무렵에 동거인에게 들켰다. 애인 아카아시 케이지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그러나 아무 말 하지 못하는 보쿠토 앞에서 아카아시는 별 화를 내지 않았다. 

어른이 되신 보쿠토 상께 뭐라 하기가 어렵네요.

보쿠토는 그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알아챌 만큼 자라 있었다.


보쿠토는 담배를 끊기가 그렇게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작조차 하지 말라던 유년기 선생님들의 말씀이 기억났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그래도 아카아시에 대한 최대한의 예의로 그의 앞에서는 절대 흡연의 티가 나지 않게 했다. 동기들에게 물어물어 고급 향수를 사고, 담배도 몰래 태우다 한계가 있어 그 횟수를 줄였다. 금연 시도는 수없이 했지만 인내심은 타고난 것이 아닌 듯, 모조리 실패했다.


보쿠토는 새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카아시가 없는 집 안, 그리 온기가 돌지 않는다. 바쁘네, 회사원 아카아시. 아카아시가 보고 싶고 손 잡고 싶었다. 배구를 그만둬도 예쁜 그 손. 얇고 가늘기만 한데 어딘가 힘이 깃든 그 손. 잡을 수 있어서 행복한 그 손.

집을 비운 애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보쿠토는 담배 반을 아카아시 생각으로 태웠다. 세 개비째, 보쿠토는 이게 오늘의 마지막 담배라고 생각했다. 아카아시가, 건강에 나쁘다고 했으니까.



"...보쿠토 상."

"어, 아카아시?!"



여기서 뭐 하세요. 뚱한 표정의 아카아시가 어느새 열린 베란다 문과 커튼 뒤에 서 있었다. 다, 다녀왔어? 담배 피우는 모습을 들킨 보쿠토는 머쓱한 얼굴로 재빨리 담배를 껐다. 회식한다며? 일찍 왔네. 들어오는 거 못 들어서... 방금 왔습니다만 보쿠토 상이 집 안에 없으시길래 설마 설마 하고 베란다 와 봤습니다. 질타 섞인 목소리는 약간의 취기가 배어 있었다. 보쿠토는 서둘러 옷을 털었다. 담배떨이를 쳐다본 아카아시는 못마땅한 기색이었다.



"세 개비나, 보쿠토 상."

"미안, 나도 모르게 많이 피워 버렸어. 아카아시 피곤해? 혹시 술 많이 마셨어? 워낙 술 마셔도 멀쩡한데다 술버릇이 없으니까 구별하기가 힘드네. 아, 담배 냄새 나려나... 뭐라도 뿌릴까?"

"됐습니다. 피곤한 거 알면 좀 안아주세요. 술이 코 좀 닥치라고 하지 않을까요..."



확실히, 오늘은 좀 달렸나 보네. 품에 안겨드는 아카아시를 안은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자그마한 변화를 잘 잡아챘다. 담배 냄새에도 연연하지 않는 작은 어리광. 보쿠토는 한껏 웃으며 아카아시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귀여워, 아카아시. 압니다... 평소에는 나올까 싶은 대답도 나오고. 



"아카아시는 술 취해도 좋아."

"당연히 좋아해야죠."

"얌전한데다가 애교가 많아지고."

"담배 냄새 나는 애인에게 하고 싶은 건 아닙니다."

"어, 진짜? 정말 뭐라도 뿌린다니까."

"괜찮아요. 곧 잘 건데요. 빨리 제 옆자리에나 누워주세요. 보쿠토 상 옆자리에선 잠이 좀 올 것 같으니까."



알았어. 술기운이 눈꺼풀을 덮으려 드는 듯 아카아시의 눈동자에 졸음이 담겨 있다. 안 그래도 진한 쌍꺼풀 때문에 눈이 무거울 텐데, 금방이라도 묵직한 눈두덩이는 뚝 떨어질 것만 같다. 우리 아카아시, 자러 가자. 싱글벙글 웃는 보쿠토는 아카아시를 번쩍 들었다. 보, 보쿠토 상! 아카아시가 눈을 번쩍 뜨곤 경악한 표정으로 보쿠토 목에 팔을 감았다. 피곤한 아카아시 침실까지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보쿠토는 공주님 안기로 아카아시와 베란다를 떴다. 내려달라는 다급한 외침에도 술 마시고 피곤하다며? 라는 장난스러운 대꾸가 돌아온다. 보쿠토 택시는 금방 손님을 침대까지 데려갔다. 진짜, 보쿠토 상은. 아카아시는 부끄러운 기색이었다. 



"옷 갈아입고 씻고 와. 난 밖에서 기다릴게."

"또 담배 피울 건 아니죠?"

"에이, 아니야!"

"알겠어요. 같이 자요, 오늘은."



보쿠토는 미소 지으며 상체를 아카아시에게 가져다 댔다. 아카아시는 머뭇거리다 가까워진 입술에 가볍게 입맞췄다. 아, 예쁘다 아카아시. 보쿠토는 아카아시의 입술에 다시 입맞추고서야 등을 돌렸다. 보쿠토는 방을 나가면서 생각했다. 내일부터 스물두번째 금연 시작이노라고.